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치원/지역별 현황/수도권 (문단 편집) == [[서울특별시]] == [[서울특별시]] 최초의 [[유치원]]은, 1900년에 설립된 경성공립유치원이다. 지금의 [[중구(서울특별시)|중구]]에 설립되었으며, [[일본인]] 전용 유치원이었다. 서울이 아직 경성부이던 시절인 1910년에는 정동유치원이 세워졌다. 1913년에는 백인기에 의해 경성유치원[* [[황인범]]이 나왔던 경성유치원과는 다른 곳이다. 이 쪽은 [[대전광역시]] 소재.]이 세워졌는데, 한국 땅에서 최초로 [[한국인]]이 설립한 유치원이며 한국인 아이들을 위한 유치원이었다. 소재지는 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재동]]이며, 종로구 최초의 유치원이기도 하다. 1914년에는 [[이화학당]]에 이화유치원이 설립되었다(최초의 [[개신교]]계 유치원). 이화학당은 1886년 [[미국인]] [[감리교]] [[선교사]] [[메리 스크랜튼]]이 중구 정동에 세운 한국 최초의 여학교로, 차츰 학년과 학제가 정비되면서 유치원도 개설된 것. 첫 원생은 [[1908년]]~[[1910년]]생이었다.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는 정동에 그대로 남았으나, 이화유치원은 1935년 [[이화여자전문학교]]와 함께 [[서대문구]] 신촌으로 이전되었고, 오늘날까지 신촌에 있다([[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유치원). 이화유치원이 세워진 후로 용산유치원, 혜라유치원 등의 유치원들도 설립되었다. [[불교]]계 유치원은 1925년에 설립된 화광유치원이, [[가톨릭]]계 유치원은 1937년 종로구 혜화동에 [[천주교 서울대교구]] [[혜화동 성당]] 부설로 설립된 혜화유치원이 최초이다. 또한 [[일제 강점기]]에 [[일본어]]를 중점적으로 가르쳤던 애국유치원[* [[백남준]]이 대표적인 ‘애국유치원’ 출신이었다. 백남준은 1932년 7월 20일 서울에서 태어나 1936~1938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으며 (이 때 아내인 이경희 여사도 같은 유치원에 다녀 부부가 같은 유치원 출신인 보기 드문 사례가 되었다. 가장 최근에는 야구선수 [[추신수]]가 아내와 같은 유치원을 다녔다.), 2006년 1월 29일 ([[설날]])에 [[미국]]에서 사망. 현재 살았으면 89세이다.]도 주로 서울에 설립됐다. 이화유치원 첫 졸업생은 거의 사망했고, 살아 있더라도 [age(1910-12-31)]~[age(1908-01-01)]세의 어르신이 됐다. 현재 설립 [age(1914-01-01)]주년을 맞을 만큼 역사가 매우 깊다. 이런 이유로 조부모나 증조부모가 다녔던 유치원에 그 자손들이 다니는 등 3~4대가 한 유치원을 다녔던 보기 드문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부모가 다닌 유치원에 자녀가 다니는 경우는 있지만 조부모나 증조부모가 다닌 유치원에 그 자손들이 다닌 경우가 드문 것은 현재 유치원생들의 조부모 세대까지는 유치원이 부유층 아이들만 다닐 수 있는 '''귀족학교''' 정도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가끔씩 보이는 유치원 다닌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대다수가 고향이 도시 혹은 읍내이고, 당시에 '''매우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다'''고 볼 수 있다. 2021년 현재 유치원생의 조부모는 1940년대 후반~1960년대 중반 출생자가 대부분이라 1980~1990년대생이 조부모가 되는 2040년대 이후부터 조부모와 같은 유치원을 다닌 원생이 크게 늘 것이다.] 일본인 자녀의 경우는 [[1894년]]~[[1896년]]생이 최초의 원생이었다. 물론 현재는 모두 사망. 과거 1950~60년대 서울의 유치원 취원율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는데[* 그래도 10%는 못 넘겼다. [[1964년]] 전국 초등학교 신입생 중 유치원에 다녀 본 사람은 1.3%에 불과했다. 즉, 신입생 100명 중 유치원 다닌 아이들이 1명 있을까 말까 하는 수준. 76학번([[1957년]]생)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이 정도였으니 60년대 학번인 어르신들은 이보다 더 낮았을 것이다. 참고로 [[박근혜]], [[윤석열]]이 유치원을 다니던 시절 유치원 취원율은 1%대였다.], 이는 부유층들이 서울의 [[사대문안]] 등에 대거 거주했고[* 그 시절 서울에 살던 사람들은 '''[[사대문안]]과 [[성저십리]] 정도만이 진짜 서울'''이라고 생각했고, 강남은 그냥 '''깡촌'''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에서 유년기를 보냈던 어르신들의 증언에 따르면, 자신은 [[서대문구]]에 살고 친척이 송파나루 (지금의 [[석촌동]], [[송파동]] 일대)에 살았다고 하면 친척을 보기 위해 용산구나 성동구까지 가서 배를 타고 거기서 1~2시간에 1대 오는 버스를 타고 가야 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니 지금의 강남 지역이 고향인 어르신들은 유치원에 다녀 볼 기회를 사실상 박탈당했던 셈이다.], 당시 유치원들이 특수초등학교 입시 대비를 해 주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부유층 학부모들이 몰린 것이다. 그냥 시대적인 배경 탓에 연세 70이 넘은 어르신들 중 '''[[대학교]]는 나왔지만 [[유치원]]은 못 다녀 본 사람이 많았을 뿐'''이다.[* 이는 [[대령]]급 이상인 장교, [[상사]]급 이상인 부사관, 3급 이상인 공무원 (7급으로 시작한 5급 이상과 9급으로 시작한 7급 이상도 대부분 포함된다.), [[총경]]급 이상인 경찰관 ([[순경]]에서 시작한 경우는 [[경위(계급)|경위]] 이상), [[소방정]]급 이상인 소방관, 교정관급 이상인 교도관, 20년 이상 근무한 [[교수]], [[시장(공무원)|시장]], [[군수]], [[도지사]], [[구청장]],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 [[장관|장]]•[[차관]], 대기업 회장, 나이가 많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스포츠 감독으로 가도 마찬가지. 특히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은 단 2명([[박근혜]], [[윤석열]])만 유치원을 다녀 봤다고 한다.] [[1908년]]생부터 [[1940년]]생까지는 유치원생 시기에 서울이 경기도 소속이었으나, [[1941년]], [[1942년]]생은 유치원 재학 도중에 서울이 경기도에서 분리됐으며 [[1943년]]생부터는 유치원 입학 이전에 서울이 경기도에서 분리됐다. [[한강]] 이남 지역에 설립된 최초의 [[유치원]]은 1927년 [[영등포구]](당시 시흥군 영등포읍)에 개원한 흥화유치원이다. 이 곳 최초의 원생은 [[1921년]]~[[1923년]]생으로 현재 살아 있다면 [age(1923-12-31)]~[age(1921-01-01)]세가 되었다. 당시 원생은 주로 현재의 [[영등포구]]에 살았고, 드물게는 [[구로구]] [[구로동]], [[동작구]] [[노량진동]], [[양천구]] [[목동(서울)|목동]](!!!) 등지에서도 왔다고 한다. 서울의 유치원 확장은 서울의 시가지 확장과 대체로 일치한다. 버스 권역으로 보면 0권역[* [[종로구]]•[[중구(서울특별시)|중구]]•[[용산구]].]-6권역[* [[강서구(서울특별시)|강서구]]•[[양천구]]•[[영등포구]]•[[구로구]].]-5권역[* [[동작구]]•[[관악구]]•[[금천구]].]-3권역[* [[강동구]]•[[송파구]].]-1권역[* [[도봉구]]•[[강북구]]•[[성북구]]•[[노원구]].]-2권역[* [[동대문구]]•[[중랑구]]•[[성동구]]•[[광진구]].]-7권역[* [[마포구]]•[[서대문구]]•[[은평구]].]-4권역[* [[서초구]]•[[강남구]].] 순인데, 처음에는 시내에 많은 사람이 모여 살다가 점차 외곽으로 거주지를 옮기면서 유치원들도 자연히 그에 맞춰 지은 것이다. 또한 시가지 팽창에 따라 기존에 시내에 있던 유치원들이 외곽으로 이전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로 중앙유치원이 있는데, 1916년 설립 당시에는 [[중구(서울특별시)|중구]] 정동에 있었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50년 가까이 그 위치를 유지하다가 1998년 [[동작구]] [[흑석동(서울)|흑석동]]으로 이전했다.[* [[1910년]]~[[1991년]]생까지는 중앙유치원이 시내에 있을 때 졸업했으나, [[1992년]]생부터는 흑석동으로 이사 간 후 졸업했다.] 운경유치원은 1959년부터 1977년까지는 [[용산구]] [[동자동]], 1978년부터 1990년까지는 [[강남구]] [[청담동]], 1991년부터 2006년까지는 [[송파구]] [[가락동(서울)|가락동]]에 있었다가 끝내 폐원되었다. [[1999년]]생들이 이 곳의 마지막 졸업생이 됐고, [[2000년]], [[2001년]], [[2002년]]생들은 다른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으로 분산 배치됐다. 관내 866곳의 유치원 중 국공립은 138곳이었으나, 국공립은 226곳으로 늘어났고, 사립유치원의 잇따른 폐원으로 822곳으로 줄었다. 다만, 2019년에는 [[관악구]]의 구암유치원이 국내 최초의 매입형 유치원이자 협동조합 유치원으로 개원했다. 또한 현행법상 불법인 임대유치원이 서울에만 50곳 넘게 운영 중이다. 유치원이 많지 않던 시절에는 [[광명시|시흥군 서면→소하읍]], [[구리시|양주군 구리면→구리읍]], [[고양시|고양군 신도면→신도읍]] 등 서울과 인접한 읍이나 면 지역에 사는 아이들이 버스나 기차를 타고 서울에 있는 유치원으로 원정 통학을 하기도 했다. 역으로 서울의 대규모 확장 이전에는 [[창동(서울)|창동]], [[도봉동]], [[방학동]], [[독산동]], [[시흥동(서울)|시흥동]], [[오류동(구로구)|오류동]], [[온수동]] 등 현재의 서울 외곽 지역에 살던 아이들이 자신이 사는 리를 관할하는 군 소재지[* [[양주군]]: 창동, 도봉동, 방학동, 쌍문동 월계동, 상계동, 중계동, 하계동, 공릉동, 묵동, 중화동, 상봉동, 망우동, 신내동, [[시흥군]]: 잠원동, 양재동, 반포동, 서초동, 방배동, 사당동, 남현동, 신림동, 봉천동, 가산동, 독산동, 시흥동, [[김포군]]: 목동, 신월동, 신정동, 방화동, 개화동, 공항동, 과해동, 가양동, 등촌동, 염창동, 발산동, 화곡동, [[부천군]]: 오쇠동, 오곡동, 오류동, 온수동, 천왕동, 궁동, 항동, 고척동, 개봉동, [[광주군]]: 내곡동, 염곡동, 원지동, 개포동, 논현동, 학동, 삼성동, 역삼동, 청담동, 대치동, 신사동, 압구정동, 일원동, 수서동, 자곡동, 율현동, 세곡동, 장지동, 문정동, 가락동, 송파동, 삼전동, 석촌동, 방이동, 오금동, 거여동, 마천동, 문정동, 장지동, 풍납동, 천호동, 암사동, 길동, 명일동, 고덕동, 상일동, 강일동, 둔촌동, 성내동, [[고양군]]: 진관동. 이들 중 유치원이 있었던 곳은 [[천호동]] 정도가 거의 유일했다. 이렇게 되어 이들 지역 중 유치원 교육의 혜택을 받은 동은 강동구 천호동, 성내동, 암사동, 길동, 명일동과 송파구 풍납동 정도에 불과했다.]나 서울에 있는 유치원으로 원정 통학을 하기도 했다. 이는 서울의 지형만 봐도 답이 나온다. 서울에서 '''산이라고 명함을 내밀 수 있는 산'''이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관악산]] 정도만 있는데, 북한산과 도봉산, 수락산은 강북에 있고, 강남 지역에서 산이라고 명함을 내밀 수 있는 산이라고는 [[관악산]] 정도밖에 없어서 (그나마 정상은 [[경기도]] [[과천시]]에 있다. [[우면산]], [[대모산]], [[아차산]], [[용마산]]은 브리태니커 기준 (해발 2,000피트 이상) 산이라고 하기에는 높이가 너무 낮다. 거의 [[네덜란드]], [[벨라루스]], [[세네갈]] 수준이다.) 개발이 용이해[* 이 과정에서 '''이름만 남고 사라져 버린 산'''도 많다. [[조계사]]의 말사 중 하나로 강남 지역에서 가장 큰 사찰인 [[봉은사]]가 있는 수도산이 대표적.] 인구가 몰리면서 강남 지역에 유치원이 많이 들어서고, 강북에서도 강남으로 명문 [[고등학교]]들이 옮겨 가면서[* 대표적으로 [[경기고등학교]], [[서울고등학교]], [[경기여자고등학교]], [[숙명여자고등학교]] 등이 있다.] 유치원도 옮겨 가는 것이다. 1950~60년대에 시도별로 유치원 취원율을 계산하면 서울이 꼭 가장 높았다[* 도 단위로 내려가도 [[부산광역시|부산]], [[대구광역시|대구]], [[광주광역시|광주]] 등 그 도의 최대도시에서 취원율이 가장 높았다.]고 한다. 시골에서 5,000명에 1명, 중소도시에서 1,000명에 1명, 지방 중견도시에서 500명에 1명 꼴로 유치원을 다닐 때 서울은 200~300명에 1명 꼴로 유치원 다닌 아이들이 있을 정도. 이 시기 유치원 취원율이 1%에 불과했던 것도 시골 지역의 유치원 취원율이 낮아서 평균을 깎아먹어 생긴 것이다. 서울은 생활권이 구별로 나뉘지 않아 다른 구의 유치원 버스가 지나다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송파구]] [[풍납동]]이 있는데, 풍납동에는 우일유치원, 동화나라유치원, 한가람유치원, 현대유치원 등 사립유치원이 있지만, 그 곳의 정원이 다 차거나, 그 지역 유치원 추첨에서 다 떨어졌거나 하는 이유로 강동구에 있는 유치원으로 보내는 경우가 있어, 풍납동의 주요 도로인 [[풍성로]]와 [[토성로(서울)|토성로]]에서 유정유치원[* 강동구 성내동 소재.], 준현유치원[* 강동구 성내동 소재.], 천호유치원[* 강동구 천호동 소재.] 등 강동구의 유치원 버스를 볼 수 있다. 이런 경우는 송파구 잠실동-강남구 삼성동[* 아침 시간대에 [[봉은사]]에 기도를 드리러 가면 봉은사 진여문 근처에서 잠실의 유치원 버스를 볼 수 있다.], 송파구 방이동-강동구 둔촌동, 성북구 장위동-노원구 월계동, 강남구 신사동-서초구 잠원동, 성동구 성수동-광진구 화양동 등에서 더 볼 수 있다. 같은 동에 사는 아이라도 어느 아파트에 사느냐에 따라 유치원이 갈리기도 한다. 사립유치원은 684군데가 있는데,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수준이다. [[전세난]]으로 [[경기도]]와 [[충청남도]][* 주로 [[천안시]]. 실제로 천안에서 서울로 통근하는 사람들도 있다.]로 빠져나가는 인구와 [[공공기관]]・[[공기업]] 이전으로 인한 이주자, 은퇴자의 수도권 인접 비수도권 이주, 제주도 이주 열풍으로 [[충청남도]], [[충청북도]], [[강원도]], [[제주특별자치도]]로 빠져나가는 인구가 많아지고 해외로 [[이민]] 등을 가는 사람들 대부분의 이전 거주지가 서울인데도 이 정도다.[* 해외에 [[이민]] 등을 가서 거주하는 [[재외국민]]의 상당수가 한국 주소를 서울이나 수도권에 두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주한 미국대사 [[성 김]] ([[1960년]]생([age(1960-01-01)]세), 1964~1966년에 유치원을 다녔다.)인데, 한국에서 [[유치원]]과 [[국민학교]]를 다니고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백지선|짐 팩]]은 아예 캐나다로 이민을 가서 그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구별로는 [[종로구]] 14곳, [[중구(서울특별시)|중구]] 10곳, [[용산구]] 13곳, [[성동구]] 19곳, [[광진구]] 30곳, [[동대문구]] 24곳, [[중랑구]] 27곳, [[성북구]] 39곳, [[강북구]] 20곳, [[도봉구]] 26곳, [[노원구]] 58곳, [[마포구]] 18곳, [[서대문구]] 22곳, [[은평구]] 38곳, [[강서구(서울특별시)|강서구]] 45곳, [[양천구]] 39곳, [[영등포구]] 33곳, [[구로구]] 26곳, [[금천구]] 13곳, [[동작구]] 29곳, [[관악구]] 26곳, [[서초구]] 19곳, [[강남구]] 25곳, [[송파구]] 45곳, [[강동구]] 26곳이다. 강북 지역에 358곳, 강남 지역에 326곳이다. 강북 지역이 52.3%, 강남 지역이 47.7%로, 강북 지역에 사립유치원이 더 많다. 이렇게 된 이유는, 강남에 영어학원 유치부(영어유치원[* 엄밀히 말하면 '영어유치원'이라는 명칭은 불법이다.])가 많이 들어섰고, 강남에 사는 사람들이 자녀를 일반 유치원보다는 영어학원 유치부[* 현행법상 이들은 ‘유치원’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못한다.]에 더 많이 보내기 때문이다. 참고로 서울의 신당동 근화유치원은 [[박근혜]] 前 대통령이 졸업한 곳[* 출생지는 [[대구광역시|대구]]이지만, [[동남 방언]]의 억양은 남아 있지 않고 [[대한민국 표준어|표준어]] 억양으로 구사한다. 박근혜는 1952년 [[2월 2일]]생([age(1952-02-02)]세)이므로 [[1956년]]~[[1957년]]경 유치원을 다녔을 것으로 추측된다. 다른 대통령들이 가난으로 유치원을 다녀 보지 못하거나 ([[최규하]], [[문재인]]), 자신의 고향에서 유치원이 너무 멀거나 ([[노태우]], [[노무현]]), 자신의 고향에 유치원이 설립되기 이전에 태어났기 때문에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전두환]], [[김영삼]], [[김대중]], [[이명박]]) 박근혜는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중 최초로 유치원을 다녀 본 대통령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윤석열]].]이며, 혜화유치원은 [[장영신]][* 장영신은 [[1936년]] [[7월 22일]]생([age(1936-07-22)]세)이므로 1940~1942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이순재 (1934년 11월 16일생)보다 겨우 2살 어린데도 유치원을 다닌 것은 그녀가 매우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셈이다. 현재 대부분의 기업인들이 유치원을 다녀 보지 못한 것으로 보면 엄청난 부유층이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1940년 장영신이 4세이던 해에 [[창씨개명]]이 실시돼 일본식 이름으로 유치원을 다녔는데, 그녀의 일본식 이름은 불명.]이, 서대문유치원은 연예인 [[구봉서]][* 구봉서는 [[1926년]] [[11월 5일]]생이고 [[2016년]] [[8월 27일]]에 사망했으므로 1930~1932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는데, 1931~1932년 사이에 다녔다. 1930년대면 [[일본어]]가 [[한국어]]보다 우위이던 시절로, 그 시절은 유치원이 매우 드물던 시절이라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을 것이다. 게다가 그 시절이면 크리스마스도 평일이었다.]가, 밀알유치원은 연예인 [[문희준]][* [[1978년]] [[3월 14일]]생( [age(1978-03-14)]세)이므로 1982~1984년에 유치원을 다녔을 것이다. 1978년생들은 버스에서 담배 피우던 시절에 유치원을 다녔고, 대부분 유치원 시절에 전무후무한 음력 윤10월 (1984년 11월 23일~12월 21일)을 경험한 셈. 그는 유치원 시절 [[풍납동]]이 침수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리라초등학교 부설유치원]]은 스케이트 선수 [[이승훈(스피드 스케이팅)|이승훈]][* [[1988년]] [[3월 6일]]생([age(1988-03-06)]세)이므로 1992~1994년에 유치원을 다녔을 것이다. 악명높은 [[풍납동]] 침수와 [[1994년 폭염]]은 이들이 유치원 시절에 겪었다. 그 시절에는 해외여행이 막 자유화된 시점이라 유치원생 중 해외여행을 가 본 사람의 비율이 한 자릿수였다.]이 졸업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강남구의 초이유치원은 [[최순실]]이 설립했고, 아란유치원은 [[우병우]]의 아들이 다녔다[* 초이유치원에 다녔다는 의혹이 있었으나, 우병우 본인이 그런 의혹을 일축했다. 물론 우병우 본인은 시골 ([[경상북도]] [[봉화군]] 상운면 가곡리)에서 태어나는 바람에 유치원 교육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1964~1966년에 유치원을 다녔다.[* 윤석열은 [[1960년]] [[12월 18일]]생([age(1960-12-18)]세, 음력 11월 1일)이라 1964~1966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윤석열이 유치원을 다니던 1960년대에는 유치원 취원율이 1%대에 불과했으므로 상당히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서울에 전차가 있고, [[문맹]]이 현재보다 더 많아서 장년층 (대부분 여성)에서도 문맹을 볼 수 있었으며, 버스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매우 당연하게 여겨졌다. 다만, [[의과대학]] 건물 내부는 그 당시에도 금연 구역이었다. 여담으로, 그의 유치원 시절 장래희망은 [[목사]]였다. 윤석열이 자신의 이름을 '윤성녈'로 발음하는 이유는 어린 시절부터 집안에서 그렇게 불러 왔기 때문에 그 발음이 익숙해서 그런 것이다.] 축구선수 [[이강인]][* [[인천광역시|인천]] 출생이다. 초등학교 4학년이던 2011년 스페인으로 이민을 갔다.]의 어머니[* [[전라남도]] [[강진군]] 출생이다.]는 결혼 전 [[서울]]에서 [[유아교사]]로 근무했다. 시인 [[김수영(시인)|김수영]]은 1925~1927년에[* 시인 김수영은 [[1921년]] [[11월 27일]]생이고, [[1968년]] [[6월 16일]]에 사망했다. (살아 있었다면 아마 [age(1921-11-27)]세가 됐을 것이다.) 그의 세대에는 유치원이 매우 드물었던 것으로 보아 당시 매우 부유한 집안에서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그 시절 서울은 매우 작았고, 강남 지역은 아직 '''[[시골]]'''이었으며, 아직 분단 이전이라 북한도 자유롭게 오고갈 수 있었다. 거기에 현재의 초등학교 격인 [[보통학교]]도 '''시험을 치러서 들어갔다.'''], 원로배우이자 전직 [[중랑구 갑]] 국회의원이었던 [[이순재]]는 1938~1940년에[* 이순재는 [[1934년]] [[11월 16일]]생([age(1934-11-16)]세)이므로 또래인 1934년생들은 주로 1938~1940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당시에는 유치원이 매우 드물었기 때문에 (게다가 보내더라도 거의 '''남자만''' 보냈다.) 상당히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크리스마스]]가 평일이었던 시절에 유치원을 다녔으므로 크리스마스 행사를 당일에 할 수 있었다. (1934년생들은 국민학교 5학년 때까지 (간이학교 졸업생은 [[간이학교]] 졸업 후에도) 크리스마스에 쉬지 못했을 정도.) 엄밀히 말하면 이순재의 고향은 [[함경북도]] [[회령군]]이지만 (이 때문에 이순재는 [[실향민/대한민국|실향민]]이 됐다.) 유치원은 서울에서 다녔으며, 유치원 말미인 1940년에는 히로키 준사이(廣城順載; ひろきじゅんさい)라는 이름으로 [[창씨개명]]까지 했다. 아마 그의 유치원 졸업앨범에는 본명인 '이순재'가 아니라 '히로키 준사이'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적혀 있을 것이다. 그 시절에는 높은 영아사망률로 출생신고 자체를 몇 년 늦게 해서 7세 이상인 유치원생이 현재보다 더 많았던 시절이었다. 1934년생이 유치원을 다니던 당시에는 민주당이 남부에서 지지율을 높이고 있었으나 한반도에는 아직 정당이 없었다.], 코미디언 [[김수용(코미디언)|김수용]]은 1970~1972년에[* 김수용은 [[1966년]] [[10월 18일]]생이라 1970~1972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이들은 100원짜리 지폐가 있고 풍납동, 잠실동, 암사동 등이 시골이며 서울의 대중교통이 버스뿐이던 시절에 유치원을 다닌 셈. 참고로 '''김수용이 유치원을 다니던 시절에 [[전한길]] (1970년 8월 21일)과 [[이기상]] (1971년 6월 25일)이 태어났다.'''], [[유재석]]은 1976~1978년에[* 유재석은 [[1972년]] [[8월 14일]]생([age(1972-08-14)]세)이므로 1976~1978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말 그대로 교련 수업과 미니스커트 단속이 있던 시기에 유치원을 다닌 셈이며, 그 시절이면 [[용인대학교]]의 전신인 대한유도학교가 [[송파구]] [[풍납동]]에 있었고, 버스에서 담배를 피우던 시절이었다.], [[용준형]]은 1992~1995년에[* 용준형은 [[1989년]] [[12월 19일]]생([age(1989-12-19)]세)이므로 또래인 1989년생들은 주로 1992~1995년에 유치원을 다녔다. 용준형은 초등학교 6학년이던 2002년에 현재의 이름으로 [[개명]]했으므로 유치원은 개명하기 전에 쓰던 '용재순'이라는 이름으로 다녔다.], [[김현수(1988)|김현수]]는 1991~1993년[* 김현수는 [[1988년]] [[1월 12일]]생([age(1988-01-12)]세)이므로 1987년생들과 같은 1991~1993년에 유치원을 다녔다. 사실상 이들은 [[황영조]]가 금메달을 따고 처음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졌을 때 유치원을 다녔던 셈. 그와 같은 시기에 유치원을 다닌 사람으로는 [[류현진]], [[최다은]], [[손고운]], [[강정호]], [[차우찬]], [[기보배]], [[최주환]] 등이 있다.]에, [[류수영]]은 1983~1985년 사이에[* 당시 유치원은 4세부터 입학이 가능했으므로 류수영([[1979년]] [[9월 5일]]생, [age(1979-09-05)]세)은 1983년에 유치원 입학 대상이 됐다. 이들은 전무후무한 음력 윤10월 (1984년 11월 23일~12월 21일)과 가장 늦은 [[설날]] (1985년 2월 20일)을 유치원 시절에 겪었다. '류수영'이라는 이름은 연예인이 된 후 예명으로 지은 이름이므로 유치원은 본명인 '어남선'이라는 이름으로 다녔다.], [[장나라]]는 1985~1987년 사이에[* 당시 유치원은 4세부터 입학이 가능했으므로 장나라 ([[1981년]] [[3월 18일]]생, [age(1981-03-18)]세)는 1985년부터 유치원 입학이 가능했다. 장나라의 또래인 1981년생은 보통 1985~1987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으나 1981년 [[1월]], [[2월]]생들은 1984~1986년 사이에 다녔다. 빠른 1981년생들은 유치원 시절 전무후무한 음력 윤10월 (1984년 11월 23일~12월 21일)을, 1981년생들은 20세기 마지막 음력 윤6월 (1987년 7월 25일~8월 22일)을 경험한 셈. 이들은 유치원 때 여름만 되면 풍납동, 성내동, 망원동 등이 물에 잠겼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장나라가 유치원을 다니던 시절은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시절이라 유치원생 중 해외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 사람이 1% 미만이었고 대학생들이 9급 공무원 시험을 무시하던 시절이었다.], 국내에서 최초로 수영에서 금메달을 딴 [[박태환]]은 1992~1995년 사이에[* 박태환은 [[1989년]] [[9월 27일]]생이라 1992~1995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이들은 유치원 시절 [[풍납동]] 침수를 겪은 셈. 그 시절이면 4년제 [[대학]] 졸업자들이 [[9급 공개경쟁채용시험|9급 공무원 시험]]은 [[고졸]]들이나 보는 시험이라며 무시하고 (게다가 당시 9급 공무원 시험 과목은 국어, 영어, 한국사, 사회, 수학, 국민윤리, 전자계산일반 등 7과목이었고 행정학, 행정법은 아직 시험 과목이 아니었다.) 거들떠도 보지 않던 시절이었고, 상위권 대학생들은 [[7급 공개경쟁채용시험|7급 공무원 시험]]도 무시했다고 한다.], 국내 최초로 [[NBA]]에 진출한 농구선수 [[하승진]]은 1989년~1991년 사이에 서울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하승진은 [[1985년]] [[8월 4일]]생([age(1985-08-04)]세)이며, 그의 또래인 1985년생들은 4세부터 유치원에 다닐 수 있었으므로 1989년부터 1991년까지 유치원에 다녔다. 다만 1985년 1~2월생들은 1988년부터 1990년까지 유치원에 다녔는데, 1985년 1~2월생들은 [[1988 서울 올림픽]]을 유치원 시절에 봤고, 나머지 1985년생들은 [[롯데월드 어드벤처]] 개장 ([[1989년]] [[7월 12일]])을 유치원 시절에 경험했다. 심지어 그 시절이면 일본은 월드컵조차 못 나갈 때였을 정도였다. (당시 일본은 [[홍콩]]과 2번, [[인도네시아]]와 1번 비기고 (그것도 다 0:0) [[북한]]에 2:0으로 지는 등 졸전을 거듭해 월드컵에서 탈락) 그야말로 하승진과 [[이다지]] (1985년 [[3월 11일]]생)는 같은 시기에 유치원을 다닌 셈. [[https://www.google.com/amp/s/m.mk.co.kr/star/hot-issues/view-amp/2020/03/223980/|2020년 하승진의 유치원 시절 사진이 공개됐는데, 유치원 시절에 초등학생 수준으로 키가 컸다고 한다.]] 실제로 하승진은 본인이 유치원 시절에 키 160cm (이는 '''유치원생 평균보다 40cm 이상 더 큰 것'''이며, 거의 [[베트남]], [[라오스]], [[인도네시아]], [[필리핀]], [[미얀마]], [[캄보디아]] 등 동남아 국가의 성인 남성 평균 키에 가깝다. 통계상으로 동남아 국가의 평균 키가 하승진의 유치원 시절 키 (160cm)와 비슷한데, 베트남은 164cm, 라오스는 160cm, 인도네시아는 163cm, 태국은 168cm, 필리핀은 163cm, 캄보디아는 163cm, 미얀마는 165cm로 평균키가 대부분 170cm 미만이다. 유치원 아이들 중 0.1% 미만이 키가 이 정도이다.), 현재 221cm를 찍은 것으로도 모자라 할아버지가 190cm, 아버지와 누나가 200cm를 넘는 등 가족 모두가 키가 크다.] [[이다지]]도 1989-1991년 사이에 서울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이다지는 [[1985년]] [[3월 11일]]생([age(1985-03-11)]세)이므로 1989~1991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다. 그야말로 1985년생들은 유치원 시절에 [[국군의 날]]이 공휴일에서 제외된 셈이며, 1985년생인 농구선수 [[하승진]]과 같은 유치원을 다닌 셈이지만, 키는 하승진이 40~50cm는 더 컸다. 게다가 그 시절이면 일본은 아직 월드컵에 못 나갔고 경기도 북부에 고속도로가 없었던 시절이다. 오빠 (1979년생), 언니 (1982년생)와 같은 유치원 출신인지는 불명.]고 한다. 1950년대 이후 서울에 [[개성시]], [[평안도]], [[황해도]] 등지에서 실향민이 몰려 오면서 강북 지역을 중심으로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 중 실향민 출신인 원아가 있는 곳도 있을 정도이다. 또한 산업화로 인해 다양한 지역에서 아이들이 몰려 오면서[* 심지어 지방 소재 대학의 [[유아교육과]]를 졸업한 교사들도 서울로 오는 경우가 있다.] 1970~80년대 서울에 있는 유치원에서는 여러 지역에서 온 원아들의 다양한 [[사투리]]를 들어 볼 수 있을 정도이다. 심지어는 유아교사들도 고향 사투리 억양이 섞인 표준어를 쓰거나 아예 자기 고향의 사투리를 쓸 정도. 2022년에는 [[이태원 압사 사고]]의 여파로 전국적으로 유치원의 할로윈 행사를 취소하는 분위기였는데 서울은 그 트라우마가 강하게 남아 있어 할로윈 행사를 취소한 유치원이 많았다. 과거 서울특별시 [[송파구]] [[풍납동]][* [[풍납토성]]으로 인해 재개발이 제한된 것은 물론, 잦은 수해로 ‘물납동’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까지 받게 되었다.]이나 [[강동구]] [[성내동(강동구)|성내동]], [[마포구]] [[망원동]]의 유치원들은 여름•가을철 [[홍수]]로 인한 휴원이 잦았으나, 현재는 홍수로 인한 휴원이 줄고, 태풍으로 인한 휴원이 늘었다. 겨울에 건조한 탓에 [[폭설]]로 인한 휴원은 더 적다.[* [[2004년]] [[3월 5일]] 폭설, [[2010년]] [[1월 4일]] 폭설 당시에는 '''진짜로''' 휴원한 적이 있다. [[2010년 중부권 폭설 사태]] 당시 서울에서만 25.8cm라는 엄청난 눈이 내려 유치원들이 모두 휴원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 풍납토성은 엄청난 종이박스 천지~~] 2016년 89세[* [[1927년]]생(현재 [age(1927-01-01)]세). 그 시절이면 유치원이 매우 드물었던 시절이고, 시인 [[김수영(시인)|김수영]] (1921.11.27 출생~1968.6.16 사망)이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이다. 이 시점에는 아직 분단되지 않아 한국인들은 북한에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었던 데다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은 서울이 아닌 경기도의 문화재였고, [[봉은사]] 역시 경기도의 절이었다.]의 나이로 퇴임한 국내 최고령 유치원 교사 역시 서울에서 근무했는데, 남한 출신도 아니고 무려 [[황해북도]] [[사리원시]] 출신의 [[실향민/대한민국|실향민]]이다. 1970년대에는 [[데모]]가 엄청나게 많아 강북 지역의 유치원들이 휴원 혹은 단축수업을 했고[* 그 시절이면 대학교 캠퍼스에 [[경찰]]이 배치될 정도로 살벌했다. (물론 데모 진압만이 아닌 장발, 미니스커트 단속도 담당했다.) 이 시기 유치원을 다닌 사람은 [[서경석]], [[박성호(1973)|박성호]], [[유재석]], [[신현준]] 등이 있었는데 당시 유치원 취원율은 10% 미만이었다.], [[1988년]] [[9월 17일]]부터 [[10월 2일]] 사이에는[* 이 기간 중 실제 등원한 날 수는 10일이었는데, [[9월 17일]]은 올림픽 개막식, [[9월 25일]]과 [[9월 26일]]은 [[추석]] 연휴 (당시 추석은 2일 연휴였다.), [[10월 1일]]은 [[국군의 날]]로 공휴일이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 유치원을 다닌 사람은 1982~1984년생이다.] [[1988 서울 올림픽]]으로 인해 서울에 있는 유치원들이 단축수업을 했다. [[2010년대]] 이후로는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미세먼지]]로 인한 휴원이 잦아지고 있다. 서울에는 [[아파트]]가 매우 많아서, 아파트 단지 하나에 유치원이 2곳 이상 있거나[* 이런 경우 같은 아파트에 살아도 몇 동에 사는지에 따라 유치원이 갈릴 정도.], 공립유치원과 사립유치원이 모두 있는 아파트 단지도 있을 정도이다. 인구도 많아서[* 한국의 도시 중 인구가 가장 많고, 미국의 어지간한 주들도 서울보다 인구가 적다.] [[가톨릭]], [[개신교]], [[불교]] 계통 유치원이 모두 있는 도시 중 하나이다.[* 다만, [[서울]]의 [[불교]]계 유치원은 대개 소규모 [[절(불교)|절]]에서 관리하고, [[조계사]]나 [[봉은사]] 등 대규모 사찰이 관리하는 곳은 없다시피 하다. 게다가 [[노원구]]의 삼육대학교 부속 유치원은 무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재림교]] 미션스쿨이다.] 1960년대 379만 3,280명이던 인구가 1990년 1,061만 2,577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계속 감소해서 2021년 966만 8,465명으로 줄어드는 등 증감을 반복하는데도[* [[종로구]] 14만 9,384명 (1.6%), [[중구(서울특별시)|중구]] 12만 5,240명 (1.3%), [[용산구]] 23만 40명 (2.3%), [[성동구]] 29만 3,556명 (3.1%), [[광진구]] 34만 6,682명 (3.6%), [[동대문구]] 34만 2,837명 (3.6%), [[중랑구]] 39만 4,702명 (4.1%), [[성북구]] 43만 7,153명 (4.5%), [[강북구]] 30만 8,055명 (3.2%), [[도봉구]] 32만 5,257명 (3.4%), [[노원구]] 52만 3,037명 (5.5%), [[마포구]] 37만 1,890명 (3.8%), [[서대문구]] 31만 2,173명 (3.2%), [[은평구]] 47만 9,835명 (4.9%), [[강서구(서울특별시)|강서구]] 58만 185명 (6.1%), [[양천구]] 45만 4,251명 (4.7%), [[영등포구]] 37만 9,480명 (3.8%), [[구로구]] 40만 4,408명 (4.2%), [[금천구]] 23만 1,733명 (2.4%), [[동작구]] 39만 1,220명 (4.1%), [[관악구]] 49만 5,060명 (5.1%), [[서초구]] 42만 5,126명 (4.4%), [[강남구]] 53만 9,231명 (5.6%), [[송파구]] 66만 7,960명 (6.9%), [[강동구]] 45만 9,970명 (4.4%)로 강북 지역에 468만 4,802명 (48.3%), 강남 지역에 505만 2,160명 (51.7%)가 살고 있다. (옛날 군(郡) 관할대로 조립해 보면 광주군 153만 6,528명 (대왕면 11만 6,754명, 언주면 44만 559명, 중대면 47만 9,736명, 구천면 49만 9,389명), 양주군 110만 2,038명 (구리면 25만 3,744명, 노해면 84만 8,274명), 시흥군 199만 9,134명 (동면 84만 4,685명, 신동면 52만 9,883명, 북면 62만 4,566명), 부천군 27만 5,748명, 김포군 104만 4,436명 (양동면 83만 5,439명, 양서면 20만 8,997명), 경성부+고양군 371만 581명 (경성부 39만 1,166명, 용강면 21만 5,957명, 한지면 34만 7,631명, 뚝도면 76만 5,965명, 숭인면 101만 6,296명, 연희면 39만 7,042명, 은평면 51만 9,502명, 신도면 5만 7,022명)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유치원은 강북 지역에 더 많다. 이는 강남에 사는 사람들이 자녀를 영어학원 유치부에 많이 보내고, 해외로 [[이민]] 등을 가서 거주하는 사람들의 이전 주소지가 대부분 서울 강남 지역이기 때문이다.], 유치원도 같이 늘었다. 원생과 교사의 성씨 분포는 전국적인 성씨 분포와 유사한 편이다. 서울의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최-정-조-강-윤-장-임 순서인데 구에 따라 장씨가 윤씨보다 많다거나, 조씨가 강씨보다 많다는 등의 세세한 변화까지 따지면 원생의 성씨 분포가 달라질 수도 있다. 다른 지역에 비해 희귀 성씨를 가진 원생도 상대적으로 많은 편. 2021년 서울에서는 공립유치원 비율이 처음으로 30%를 넘겼는데 저출산과 코로나19 사태로 사립유치원이 잇따라 폐원되고 대신 공립이 늘어나면서 생긴 결과이다. 서울에 방송국이 많이 있다는 특성상 서울에 사는 유아들은 유치원 시절 방송국 소풍을 갈 수 있으며, 서울 동북부에서는 [[어린이대공원]]으로, 서울 강남4구에서는 [[올림픽공원(서울)|올림픽공원]]이나 [[롯데월드 어드벤처]]로 많이 간다. 이는 인근의 하남, 성남, 구리, 의정부, 도농, 덕소, 팔당, 퇴계원, 사릉, 평내, 마석, 퇴촌, 남종, 양수리 일대는 물론 멀리는 포천, 연천, 철원에 있는 유치원에서도 서울로 소풍을 많이 온다. 1999년에는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사고]]로 서울 소망유치원 원생들이 사망했고[* 희생자들은 대부분 [[1993년]]생이었으므로 살아 있었다면 28세이다. [[김순덕]]은 이 사고의 여파로 큰아들을 잃고 [[뉴질랜드]] 이민을 떠났다.], 2020년 9월 14일에는 대왕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원생 1명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기도 했다. 같은 해에는 해당 유치원에서 근무하는 28세 여교사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2번 (3월 12일, 5월 13일) 받기도 했다. 또 같은 해 9월 5일에는 성동구 아이들세상유치원 원생 1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으나 교사와 다른 아이들은 모두 음성이었다. 2020년 12월 서울의 유치원들은 모두 원격수업으로 전환되었다. 2021년 2월 17일부터 20일까지 서울 양천구의 유치원에서 원생과 가족 등 18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고 같은 해 4월 25일과 27일에도 유치원생 1명, 5월 9일, 12일, 21일에는 동대문구의 병설유치원 유치원 교사 4명, 6월 28일과 7월 15일에는 유치원생 3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2022년 12월 15일 서울의 한 유치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